06.07 盤點韓國10名大器晚成的明星

是金子不論到什麼時候都會發光,就算經歷了數十年的考驗,總會等到發光的那一天。明星們也不是所有的人都是一夕之間就變成大明星的,大器晚成的明星也有很多。

“인고의 시간을 보낸 ‘대기만성형’ 스타 베스트10

”度過隱忍期的‘大器晚成型’明星 best10”

‘어느 날 자고 일어나보니 스타가 되어 있더라’라는 말이 있다. 언제 어떻게 기회가 찾아와 ‘빵’ 터질지 모르는 연예계에서는 흔한 일이다. 하지만 반대로,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채 인고의 시간을 견딘 후에야 시나브로 대중의 눈에 띄는 스타들도 있다. 긴 시간 동안 공들여 갈고 닦은 탓일까. 그들이 지닌 빛은 더 오래, 더 찬란하게 빛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고는 한다. 그럼 지금부터, 큰 그릇을 채우느라 남들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던 대기만성형 스타들을 함께 만나보도록 하겠다.

有一句這樣的話“突然有一天,睡醒之後就變成明星了”。不知道什麼時候機會來了就爆發了,這在演藝界很常見。但是反過來,也有愛很長時間內都沒有被髮掘,長期隱忍之後漸漸被大眾發現的明星。是經過長時間的磨鍊的原因嗎。他們所擁有的光芒是更持久的,感覺會散發更燦爛的光芒。那麼現在開始,去看看那些為了成為更大的明星比起別人花了更多時間的大器晚成型的明星吧。

“이시영”

“李詩英”

盘点韩国10名大器晚成的明星

이시영이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20대 초반. 그녀는 배우가 되고자 끊임없이 기획사의 문을 두드렸고,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이어 나갔지만 기회는 이시영을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좌절하지 않았다. 특유의 끈기로 개명까지 마다하지 않으면서 작은 역부터 천천히 커리어를 쌓아 나간 끝에 결국KBS 미니시리즈 의 ‘민지’역으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게 되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스물여덟. 그 이후로도 이시영은 의 철부지 악녀 부태희 역을 익살맞게 소화하면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실력을 갈고닦았기 때문일까. 이름을 알린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는 그 흔한 ‘연기력 논란’에 단 한 번도 휩싸인 적이 없다.

李詩英是20代初半的時候有想做演員的夢想的。她為了能夠成為演員不停地去敲企劃社的門,雖然和有關人員見面了,但機會卻沒有輕易找到李詩英。但她還是沒有挫折。以其特有的毅力,連改名都不說,從小角色開始慢慢地積累,最終出演了KBS迷你劇系列《花樣男子》的“敏之”一角,進入大眾的視線。當時她已經28了。那之後,李詩英詼諧的駕馭了《富翁的誕生》中不懂事的惡女角色傅泰熙而開始乘勝長驅。是因為長時間的磨鍊嗎。雖然有知名度已經很久了,但她一次都沒有被捲入經常發生的“演技爭議”中。

“정해인”

“丁海寅”

盘点韩国10名大器晚成的明星

2013년 AOA의 뮤직비디오 '모야'로 데뷔할 당시, 정해인은 신인치고는 적지 않은 스물여섯이었다. 이십 대 초반에 데뷔해 꾸준히 필모를 쌓은 뒤 서른 줄에 접어 들어서야 입대를 하는 보통의 남자 배우들과는 달리, 일찌감치 군대에 다녀와서 배우 생활을 시작했던 것. 하지만 ‘군필’은 오히려 정해인만의 장점이 되었고, 군대 걱정을 던 덕분에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 나갈 수 있었다. TV조선의 '백년의 신부'로 첫 드라마 연기를 경험한 정해인은 '삼총사', '블러드', '응답하라 1988', '그래, 그런거야', '도깨비', '당신이 잠든 사이에'까지 다양한 작품에 작은 역할로 출연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단계씩 입지를 다진 결과, 드디어JTBC의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첫 주연을 맡으면서 그야말로 ‘만개’할 수 있게 되었다.

2013年出演AOA“MOYA”的MV出道時是新人都算不上的26歲時期。20代初半出道之後一直不斷積累演技,進入30代之後服兵役的一般男演員不同的是,丁海寅早早地就去了軍隊,之後才開始演員生活。但是服完兵役反而成為了丁海寅獨有的優點,因為不用擔心軍隊問題,可以一步一步地積累經驗。通過TV朝鮮的《百年的新娘》第一次嘗試演技的丁海寅先後在《三劍客》、《Bloded》、《請回答1988》、《是的,是那樣的啊》、《鬼怪》、《當你沉睡時》等很多作品中出演了很多小角色。然後就這樣一步一步的立足之後,終於在JTBC的電視劇《經常請吃飯的漂亮姐姐》中擔任主演才算得上是“盛開”。

“유재석”

“劉在石”

盘点韩国10名大器晚成的明星

유재석은 1991년, KBS 1회 ‘대학개그제’ 입상을 계기로 화려하게 연예계에 데뷔했다. 당시 어린 유재석은 자신이 금방 스타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달리, 무명생활은 무려 7년이 넘도록 이어졌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그는 남희석, 김국진, 김용만 등 데뷔 동기들이 펄펄 날아다니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하는 일마다 어긋나기만 했지만, 모든 것을 자신의 실력과 노력 부족으로 돌리고 단 한 번의 기회만을 간절히 기다렸다는 유재석. 결국 그의 겸손함과 끊임없는 자기계발은 그를 국민 MC라는 꽃길로 인도했고, 유재석의 전성기는 십수 년째 끝나지 않고 있는 중이다.

劉在石1991年,以KBS 第一屆《大學喜劇節》為契機,華麗地在演藝圈出道。當時,年輕的劉在石認為自己很快就會成為明星。但是和期待的不同,足足過了7年多的無名生活。所以在那段時間他不得不關注南希碩、金國鎮、金勇萬等同期們火的樣子。雖然做的每件事都會有錯亂,但卻把所有的一切都當成補充自己的實力和努力的不足,只等待那一次機會的劉在石。最終他的謙遜和不斷的自我開發將他引向成國民MC的花路上,劉在石的全盛期在連續數十年仍沒結束。

“황치열”

“黃致列

盘点韩国10名大器晚成的明星

2007년 가요계에 데뷔한 황치열은 꾸준히 음악을 해왔다. 듣는 사람이 적을지라도 계속해서 새 앨범을 발표했고,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하는 등, 생계 활동도 놓지 않았다. 그야말로 ‘치열’하게 살아왔던 거다. 그렇게 꾸준히 한 우물을 파던 황지열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 건 2015년경. 그는 Mnet의 ‘너의 목소리가 보여’를 통해 인상적인 모습을 남겼다. 그 결과 KBS2 ‘불후의 명곡’에도 출연할 수 있었다. 기회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MBC 예능 프로그램인 ‘나 혼자 산다’에 고정 출연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게 됐다. 그리고 2016년, 그의 운명이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중국판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면서 단박에 한류스타로 각광받게 된 것. 덕분에 ‘나 혼자 산다’ 출연 당시에만 해도 옥탑방에 살았던 그는 불과 몇 년 사이, 서울에서 가장 집값이 비산 아파트에 당당하게 입성할 수 있게 되었다.

2007年在歌謠界出道的黃致列不斷地做著音樂。即使是聽的人少,也繼續發表新專輯,並作為主唱教練活動等,並沒有放棄生計活動。那才是“熱情”的生活著。那麼堅持一件事的黃致列,2015年終於等到了一生僅此一次的機會。他通過Mnet《看見你的聲音》留下了令人印象深刻的一面。最終出演了KBS2《不朽的名曲》。機會將尾巴掛在尾巴上,在MBC的綜藝節目《我獨自生活》中固定出演,讓人知道了這個名字。於是2016年,他的命運完全改變了。在中國版《我是歌手》中,一下子作為韓流明星而受到矚目。託節目的福,他在出演《我獨自生活》的時候,只能住屋塔房的他,不過幾年間,就堂堂正正地搬入了首爾房價最高的公寓。

“류준열”

“柳俊烈”

盘点韩国10名大器晚成的明星

류준열은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처음 이름 석 자를 알렸다. 그때 당시 그의 나이는 이미 서른. 남들에 비하면 분명 늦은 출발이었다. 하지만 ‘응답하라 1988’ 종영 이후 바로 MBC의 미니시리즈 ‘운빨로맨스’의 주연을 꿰찼다. 그 이후 ‘더 킹’, ‘택시운전사’, ‘리틀 포레스트’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명실상부 충무로 최고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상황. 유명해지기 전부터 꾸준히 독립영화에 출연하면서 다져 놓았던 물 샐 틈 없이 완벽한 연기력이 그의 성공 요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柳俊烈通過tvN的電視劇《請回答1988》第一次出名。他當時已經30歲了。和別人比起來明顯是很晚才出發。但是《請回答1988》結束後,馬上就在MBC的迷你劇《好運羅曼史》中獲得了主演。之後他相繼出演了《The King》、《出租車司機》、《小森林》成為了名副其實的忠武路最棒的藍籌股。在變得有名前就開始就一直在出演獨立電影,完美的演技就是他成功的原因。

“조진웅”

“趙震雄”

盘点韩国10名大器晚成的明星

‘스타’라기보다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조진웅. 그 역시 전형적인 대기만성형 스타에 해당한다. 기나긴 무명시절을 보낸 조진웅은 KBS2의 주말연속극 에 순박한 재미교포로 등장하면서 처음으로 대중의 눈에 들었다. 이후 SBS의 사극 ‘뿌리 깊은 나무’에 무사 무휼로 등장하면서 특유의 카리스마를 인정받았고, 영화 ‘범죄와의 전쟁’ 이후 그야말로 ‘믿고 보는 배우’로 완벽하게 자리 잡았다. 이후 일본에서 리메이크될 정도로 큰 인기를 불러 모았던 tvN의 드라마 ‘시그널’의 주연을 맡으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배우 대열에 들어섰고, 그의 소탈하면서도 묵직한 연기는 꾸준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중이다.

與其說是“明星”,“演員”的修飾語很適合的趙震雄。他也屬於典型的大器晚成型明星。曾度過漫長的無名時期,趙震雄在KBS2的週末劇《相信愛情》中以淳樸的在美僑胞,第一次進入了大眾的眼中。在接下來的SBS電視劇《樹大根深》中以侍衛無恤登場,獲得了特有的魅力,電影《與犯罪的戰爭》之後,完美地成為了“信任的演員”。之後作為獲得了被日本翻拍的很高人氣的tvN電視劇《信號》的主演成為了大韓民國最有名的演員.在他灑脫的同時,沉穩的演技正在持續受到大眾的喜愛。

“변희봉”

“邊熙峰”

盘点韩国10名大器晚成的明星

배우 변희봉의 출발점은 사실 연기자가 아닌 성우였다. 연기자로 전업한 이후, 변희봉은 수많은 드라마에서 개성 강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스타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오로지 열정 하나로 연기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한때는 생계가 어려울 정도로 힘든 생활을 해야 했던 변희봉을 구제했던 건 다름 아닌 영화감독 봉준호. 봉준호의 데뷔작인 를 시작으로 , 등에 잇따라 출연하면서 그야말로 ‘봉준호의 페르소나’로 떠오른 변희봉은 70대의 늦은 나이에 영화 로 칸 국제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演員邊熙峰的出發點其實不是演員而是配音演員。當演員轉業之後,邊熙峰雖然在眾多電視劇中展現了強烈的個性,但是沒有登上了明星的行列。但是他沒有挫折,只憑著熱情,人生走到了演技路上。沒有別人,就是電影導演奉俊浩救濟了曾經有一段時間連生活下去都很難的邊熙峰。以奉俊浩出道作品的《綁架門口狗》開始,接連出演了《殺人的回憶》、《怪物》之後,成為了奉俊浩的Farlyon的卞熙峰,在70多歲的年紀,因電影《玉子》踏上戛納國際電影節的紅毯。

“워너원 윤지성”

“WANNA ONE尹智聖”

盘点韩国10名大器晚成的明星

프로듀스 101 시즌 2에 연습생으로 출연한 끝에 보이그룹 워너원의 리더로 데뷔한 윤지성 역시 대기만성형 스타의 전형이다. 아이돌로서는 ‘조상 격’ 나이에 해당하는 스물일곱에 데뷔한 그는 유난히도 긴 연습생 생활을 보내야만 했다. 코앞에서 데뷔가 좌절되는 경우가 숱하게 많았지만 그는 포기 대신 대학원 진학, 심리 치료 공부 등의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두면서 끊임없이 꿈을 좇았다고 한다. 특유의 소탈한 캐릭터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윤지성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어려웠던 시절, '정말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질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 자신을 버티게 한 원동력이었다며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다.

produce101第二季中以練習生出演,後來作為男團Wanna One的隊長出道的尹智聖也是大器晚成型明星的典型。作為偶像組合的“前輩”的年齡段的27歲才出道的他,一定要讓他走出漫長的練習生生活才行。雖然有很多近在眼前的出道挫折的情況,但是他沒有放棄,反而去考了研究生,學習心理治療等現實性的方案,並不斷追求夢想。以特有的灑脫角色而備受喜愛的尹智聖在與某媒體的採訪中提到困難的時候,“真的很懇切地希望能實現”這一想法是讓自己堅持的原動力。還說“真的很喜歡乙醇效應那句話。

“김윤석”

“金倫奭”

盘点韩国10名大器晚成的明星

아침드라마나 영화의 단역 등으로 소소히 배우 생활을 이어오던 김윤석. 김윤석을 아는 이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연기는 참 잘하는데 이상하게 잘 안 풀린다’라고. 하지만 하늘은 역시 원석인 그를 그냥 두지 않았다. 2006년, 영화 의 아귀로 단숨에 충무로의 신 스틸러로 떠올랐던 것. 그의 강력한 존재감은 이내 의 타락한 형사 역으로 이어졌고, 결국 를 통해 유수의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타내기에 이르렀다. 그 이후의 날고 기는 커리어에 대해선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 큰 역 작은 역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연기만을 쫓아온 그의 뚝심이 좀 늦었지만 더욱 눈부신 성공의 반석이 되었던 셈이다.

以晨劇或電影的配角,一直保持著演員生活的金倫奭。以知道金倫奭的人的口被熟知。演技真的很好,但是很奇怪的發展不太好。但是老天果然不會就讓他那樣待在原地。2006年《老千》中以老鬼的角色一瞬間成為了忠武路的新演員。他強烈的存在感成為了《追擊者》的墮落的刑警角色,通過《追擊者》在幾個電影節上獲得最佳男主角獎。之後的經歷沒有必要再進行更多的說明。不分大角,只追著演技的他,雖然有點遲了,但還是成為了成功的磐石。

“송해”

“宋海”

盘点韩国10名大器晚成的明星

전국노래자랑의 영원한 오빠, 개그맨 송해야말로 대기만성형 스타의 끝판왕이라고 불러 마땅하다. 한 방송에 출연한 송해가 스스로를 ‘대기만성형’이라고 칭했기 때문. 그는 자신의 커리어를 두고 “50대까지 허송세월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배삼룡, 서영춘과 같은 걸출한 선배들의 그늘에 가려 빛을 못 본 채로 무려수십 년의 무명생활이 이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덧 황혼을 바라보는 50대가 되어서야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야전무대를 해보자”는 신출내기 PD의 제안으로 을 만났던 것. 그 이후, 그는 수십 년 동안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국민 MC로 거듭날 수 있었다.

全國歌謠大賽永遠的哥哥,搞笑藝人宋海是大器晚成型明星的終結者。在一個節目中出演的宋海被稱為“大器晚成”。他放下自己的經驗表示:“到50多歲為止一直都是虛度光陰。”在裴三龍、徐英春等傑出的前輩的陰影下,足足有幾十年的無名生活。而且,直到不知不覺間到了5 0多歲的時候才能找到一生的機會。新出的新人導演提議“做夜戰舞臺吧”,遇到了《全國歌唱大賽》。此後,他可以成為一位數十年來獲得國民喜愛的國民MC。


分享到:


相關文章: